카테고리 없음

[K리그 인물알아보기] 박건하 선수편

징니남편 2020. 5. 18. 18:20



수원삼성블루윙즈의 창단멤버이자 깃을 올리는 세레머니로 유명한 수원삼성의 공식레전드 박건하 선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박건하선수의 깃올리기 세레머니



출생:1971년 7월 25일 대전 출생
신체조건:182CM/75KG
소속팀:이랜드 푸마(1994~1995)
수원삼성블루윙즈(1996~2006년)
포지션: 공격수/중앙수비수

대전 우송중학교 2,3학년때에 전국대회에 나가 당시 우승이 오래된 학교를 우승으로 이끌며 두각을 보였고
우송고등학교 경희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이후 1994년 박건하선수는 K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으나 당시 K리그에 있던 드래프트 시스템에 대한 반발로 드래프트를 거부를 하고 당시 실업팀 최강팀인 이랜드 푸마에 입단을 해 활약을 했습니다.

이후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창단되어 프로진출을 선언 계약금 2억 2천만원 연봉 1600만원에 수원의 창단멤버로 입단을 하게 됩니다.

1996년 수원에서 뛴 첫시즌에서 중고신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첫경기부터 2골을 넣으며 맹활약 첫 시즌에서 34경기 14골 6도움이라는 엄청난 활약으로 첫시즌만에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97년,1998년 수원삼성 창단후 첫 리그우승시절에도 수원에서 활약을 하였지만 양 시즌들은 박건하 선수가 인상이 깊지 않은 시즌이였습니다.
당시 외국인선수인 알라올, 유리 선수에게 밀려 주전기회를 보장받지 못하였습니다.
주전으로 나오는 경기에도 잘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플레이의 완성도가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2년간 부진으로 몰락한 신인왕이라는 인식이 박혀갈때쯤 1999년 시즌 김호 감독의 지원아래 12골 6도움으로 맹활약해 리그, 컵대회 전관왕이라는 신화 달성에 주역으로 박건하 선수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2000년도에는 황선홍 선수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샤샤 선수와 함께 3개월동안 가시와 레이솔에 임대로 갔다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채 수원삼성으로 복귀 하게됩니다.
복귀하고 후반기에 수원삼성에서 활약하며 수원의 상승세의 큰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전남드래곤즈와 경기에서 K리그 통산 27번째로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2001년도는 산드로선수에 밀려 주전은 차지하지 못했으나 후반 조커로 출전하며 천금같은 골들을 터트리며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 아시아슈퍼컵의 우승을 이뤄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002년 박건하 선수는 당시 수비진들의 뎁스 부실과, 본인의 공격수에서의 폼저하, 수비수로서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김호 감독에 의하여 중앙수비수로 포지션 변경을 실시하였는데 발이 느려졌지만 기존 본인이 공격수였던 심리적 특성을 잘 이해하여 좋은 수비를 펼쳐 포지션변경에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수원삼성이 운용하던 4백에서 조성환 선수, 조병국 선수같은 젊은 선수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2003년에는 팀의 공격진이 대거 부상당하며 임시적으로 공격수로 뛰기도 했지만 수원의 수비진을 책임지며 수비수로의 활약이 더욱 두드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에는 무사선수와 함께 수비라 라인을 구축하여 맹활약을 펼쳐 팀의 3번째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2005년에는 노쇠화의 기미가 뚜렷하게 보이며 수원의 10위 추락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이 해에 박주영 선수와의 몸싸움에 코뼈부상을 당하며 안면 보호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출장하기도 하였습니다.

2006년 박건하 선수는 플레잉코치로 등록되며 15경기를 뛰게 되었고 2007년 선수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수원삼성에서만 통산 292경기를 출장으로 수원 삼성의 20주년 공식 레전드에 선정되었습니다.

TMI)박건하 선수가 공격수로 활약하던 시절 당시 친하게 지내던 외국인 공격수들은 이름 발음이 어려워 친숙하게 찰리 박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